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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상식

일본의 버블경제 그리고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아베노믹스)

by 모찌하을 2023.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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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버블경제

일본의 호황기

 1980년 당시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잡고자 폴볼커가 기준금리를 20%나 올리며 과도한 긴축정책을 펼칩니다. 이에 따라 달러는 초강세를 띄고 일본은 국제 무역에서 큰 수혜를 보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달러 대비 엔화가 약세(엔저)가 되자 자동차 수출이 증가하며 대미 무역에서 일본은 엄청난 흑자를 보게 됩니다.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국가 내부에서 많은 기업과 개인이 부동산과 주식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세계 50대 기업순위에서 일본 기업들이 33개나 있을 정도로 위상이 높았습니다.

 

일본의 버블경제

 최고의 호황기를 누리던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에 의해 성장에 제동이 걸립니다. 무역적자를 보던 미국이 해당 부분에 제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플라자에서 서독의 마르크화와 일본의 엔화가치 절상에 대한 합의를 하게되고 이를 자 합의라 합니다. 세계 최강의 군사 대국이던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일본은 강제적으로 엔고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엔화대비 달러의 가치가 반으로 떨어지게 되면서 엔화 가치는 상승하게 됩니다. 이에 일본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졌고 수출이 감소하게 되면서 곧 성장률 감소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일본정부는 내수시장을 키우기 위해 금리인하와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정책을 선택합니다. 우선 5%대 금리를 단기간에 2.4%선까지 내리고 LTV(주택담보대출)을 200%까지 올려 부동산을 활성화시켰습니다. 대출이 급증하였고 엄청난 돈이 각종자산 (부동산, 주식)으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기업은 기술의 투자가 아닌 주식을 투자했고 사라들도 역시 주가상승으로 더 큰 재테크 투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니케이 지수는 1984년 1만 수준에서 1898년 약 4만까지 올랐고 도쿄중심의 땅값이 폭발적으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상업지구, 주거지구, 땅값 말할 것도 없고 도쿄 이남의 땅값도 들썩 거리며 올랐습니다. 1990년 일본의 전체 부동산 가치는 2000조엔 넘는다는 계산이 나왔는데 이는 당시 미국 땅값의 4배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부동산 버블은 심각했습니다. 투자 광풍이 불었고 고급수입차와 초고과 명품등 사치스러운 풍조가 만연해졌습니다.

 

 강압적인 엔고정책은 끝났으나 일본경제는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투자자들은 기업의 현금흐름을 신경 쓰지 않고 불어나는 자산만 보고 마구 투자함으로써 일부 기업들은 점점 부실해져 갔고 높은 토지가격으로 인해 기업의 채산성이 낮아지고 정부 역시 도시개발, 도로, 건설 등에 어려움이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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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게나마 이런 문제를 인지한 정부는 당시 2.5% 기준금리를 1년만에 6%까지 올렸습니다. 그럼에도 89~90년 땅값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급기야 1990년 4월 일본 정부는 대출 총량제를 발표했습니다. 기존 LTV는 200%였지만 70%로 제한하면서 부동산 시장에는 담보가치 폭락으로 거품이 붕괴되어버리고 경기침체가 장기화되었습니다. 투기업자와 건설업계, 금융기관의 연쇄도산과 막대해진 부실채권, 임금삭감, 대량해고 등의 구조조정이 일어났고 가계소비지출 최저로 수십 년간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며 장기 불황에 빠지고 맙니다.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로 1500조 엔의 자산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이는 지금 원화가치로 15,285조 6000억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버블 징후가 나타날 때 엔고로 물가가 안정상태라 사전에 미리 대응하는데 실패했으며 1989~1990년 너무 빠르고 강하게 금리인상을 해 자산가격의 급락을 막지 못하였고 금융기관 부실에 신경쓰기보다는 부동산 경기부양에 몰두한 것이 버블의 피해를 더 키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30년 아베노믹스

 

아베노믹스, 잃어버린 30년

  1995년 1월 고베 대지진으로 일본의 보험사들은 해외 투자를 해놓은 자산을 매각하여 보험금을 지급해 줍니다. 이로 인해 엔화가치가 초강세를 띄고 수출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안 그래도 버블붕괴와 금융기관의 부실로 내수가 어려웠기에 일본의 불황은 이어지게 됩니다. 1995년 4월 G7정상회담에서 역플라자 합의로 엔화약세를 허용하게 됩니다.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으로 또다시 슈퍼 엔고사태가 발생하여 일본의 수출이 어려워지고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일본주식은 폭락하며 경상수지는 날로 하락합니다. 

 

 이러한 일본의 20년 가까이 이어져온 엔고와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2012년 새로운 아베총리가 2013년 아베노믹스 경기부양책을 실시합니다. 아베신조와 이코노믹스를 합친 신조어로 2012~2020년 시행되었고 2~3%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무제한 양적완화, 마이너스 금리를 통해 일본의 장기침체를 끌어올리겠다는 정책입니다. 엔화를 무한정 발행하여 유동성을 공급하고 엔화가치를 떨어뜨려 엔저 현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엔화가치가 떨어지면 일본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올라 수출은 증가하고 투자, 소비를 유도해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목적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부동산 버블 이후 저성장, 과도한 부채 등으로 금리를 인하했음에도 가계의 소비와 기업의 투자가 늘지 않고 오히려 대출을 갚으며 생각만큼 경기가 부양되지 않았습니다. 또 초고령국가인 일본의 경우 이자소득과 국민연금으로 살아가는 고령층이 상당수인데 금리를 낮추고 수입물가를 상승시켜 그리 반가운 정책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아베노믹스 정책으로 인해 7년 동안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에서 1% 부근의 물가상승률을 보였고 엔화를 많이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가계로 연결되지 않아 내수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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